STORY 도전 통찰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의 가치: 비효율이라는 가장 비싼 투자

국책연구원, 전략 컨설턴트, 스타트업 CTO를 거쳐 1인 빌더가 되기까지—중첩된 시간이 만든 힘.

Vailyn
Vailyn 2026.04.17
코드가 실행 중인 노트북과 정리된 노트, 메모가 놓인 작업 공간, 혼란스러운 시스템을 정리하며 기술 조직을 이끌어가는 CTO의 업무 환경을 보여주는 장면

1. 경제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하루

전략 컨설턴트로 일하던 시절, 저의 모든 시간은 ‘빌링(Billing)’의 대상이었습니다. 시간 단위로 비용을 청구하고, 투입 대비 산출(ROI)이 나오지 않는 일은 과감히 도려내는 것이 제 업무의 핵심이었습니다.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시간은 낭비였고, 효율성이 곧 정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일상은 그때의 기준에서 보면 ‘최악의 투자’입니다. 당장 통장 잔고를 늘려주지 않는 기능을 만들고, 구조를 바꾸고, 수익 지표가 찍히지 않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간들. 경제적 논리로만 보면 저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구간을 지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 비효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중첩된 시간’의 기록을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2. 쉼 없이 중첩되어온 시간의 기록

돌이켜보면 제 삶에 '하나의 길'만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대학 졸업 무렵, 중국어 과외와 수학 강사를 병행하면서도 주말이면 YMCA에서 한국어 강사 봉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제 시간은 늘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있었습니다. 그 치열함은 중국 정부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베이징에서 보낸 3년의 석사 과정으로 이어졌고, 그곳에서도 학업과 삼성 직원 대상 한국어 강의를 병행하며 언어와 교육의 현장에 깊숙이 발을 담갔습니다.

귀국 후에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국책연구원)에서 인턴 연구원으로 법과 정책의 논리를 익혔고, 곧바로 전략 컨설턴트의 길로 들어서 7년간 쉼 없이 달렸습니다. 프로젝트를 겹쳐 수행하며 주니어 시절부터 준 PM 역할을 맡을 만큼 빠른 성장을 보여주었지만, 한편으론 몸이 망가지고 나 자신을 잃어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컨설턴트로 일하면서도 국책연구원의 번역 과제를 병행하는 등, 저는 늘 스스로를 극한의 효율 속으로 몰아넣으며 전문가로서의 근육을 키워왔습니다.

3. '전략가'와 '빌더' 사이의 치열한 실험

야생으로 나온 뒤에도 저의 '중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개인 라디오 방송부터 스타트업의 전략·기획 총괄 전무이사(CSO), 그리고 기술적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CTO 역할까지. 비록 그 스타트업은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간접적인 창업 경험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제대로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참여한 창업 부트캠프에서 코딩과 전략을 융합한 미니 창업을 경험했고, 이후 8개월간 이어진 고강도 AI 부트캠프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이론과 실습, 수차례의 경진대회와 PT 준비에 매달렸습니다. 컨설턴트의 전략적 사고에 개발자의 실무 감각을 덧입히기 위해 보낸,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레이어가 쌓인 끝에 탄생한 첫 번째 테스트 배포작이 바로 idealtypetest.com이었습니다.

4. '돈'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주는 불안함

세상은 언제나 ‘결과’로 과정을 평가합니다. 특히 1인 개발자에게 그 결과는 대개 ‘돈’입니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개발 시간은 불안함을 동반합니다.

“이 기능을 만드는 데 쓴 사흘이 정말 가치 있었을까?”
“이 구조를 개선한다고 유저가 늘어날까?”

이런 의문들은 저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전략 컨설턴트로서 가졌던 날카로운 잣대가 이제는 제 자신을 향해 “지금 이 시간이 맞는 거야?”라고 묻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쏟아붓는 시간은 확신보다 불안에 더 가깝습니다. 수익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부재할 때, 시간은 그저 흘러가 버리는 모래알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5. 기준의 재정의: 쌓이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는 이 불안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기준을 다시 세우기로 했습니다. 단기적인 수익이 아니라, 제 안에 쌓이는 ‘무형의 자산’으로 시간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중국어 전공자로서 다국어 서비스의 미묘한 뉘앙스를 직접 다듬는 감각, 한국어 강사와 연구원으로서 문장의 결을 살피던 안목, 그리고 부트캠프에서 밤새 익힌 기술적 로직을 전략적 사고와 결합하는 능력. 이 모든 것들은 당시에는 각기 다른 영역의 일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제 서비스의 독보적인 깊이를 만드는 ‘판단 기준’과 ‘직관’으로 축적되었습니다.

일본어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높은 트래픽을 지켜보며 저는 추측합니다. '단순한 기계 번역이 아니라, 내가 직접 공들여 다듬은 언어의 결이 유저들에게 닿았구나'라고 말이죠. 과거에 ‘돈이 되지 않았던 시간’들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비효율적으로 보였던 과거의 파편들이 현재의 역량과 만나 ‘나만의 고유한 무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6. 점들이 연결되는 시간 (Connecting the Dots)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지만, 과거를 돌아보며 연결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들—기능을 고치고, 코드 구조를 바꾸고, 방향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은 수익으로 가는 직행 노선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감각’이 쌓이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이 유저에게 먹히는지, 어디서 기술적 병목이 생길지, 어떤 방향이 서비스의 본질인지에 대한 감각 말입니다. 이 숙련도는 오직 ‘수익이 나지 않는 지루한 시간’을 묵묵히 버텨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훈장입니다. 돈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얻은 통찰과 판단 기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7. 현실과 이상의 균형 잡기

물론, 무작정 “의미 있는 시간이야”라고 자위하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1인 개발자이자 빌더로서, 결국 서비스는 수익과 연결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내실을 다지는 축적의 시간’과 ‘수익으로 전환하는 실행의 시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조차 수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지만, 이 성찰을 통해 제 철학이 단단해진다면 그것은 더 큰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전략적 선택이 됩니다.

8. 맺으며: 불안하지만 멈출 수 없는 이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궤도’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만드는 과정은 때로 막막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성장은 항상 ‘돈이 되지 않았던 시간’들에 일어났습니다.

전략가로서의 치밀함과 빌더로서의 끈기, 그리고 언어학자로서의 섬세함을 동시에 가진 독특한 존재가 되기 위해, 저는 오늘도 이 비효율적인 시간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당장 금전적인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제 삶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비효율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기에, 저는 조금 더 가보려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수익이 없어도, 과거의 모든 경험을 녹여 나만의 가치를 쌓아가는 이 과정을 응원해 주세요.
여러분의 지지는 제가 불안을 확신으로 바꾸고, 이 고독한 축적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소중한 동력이 됩니다."

* Ko-fi를 통한 후원은 메뉴, 프로필, 혹은 하단 링크를 통해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