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없는데 계속해야 할까: 모호함의 구간을 지나는 법
성공도 실패도 아닌 애매한 시점, 내가 '조금 더 가기로' 결정한 이유
1. 멈춘 것은 아니지만,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오늘도 저는 책상에 앉았습니다.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코드를 짰고, 현지화 문구를 다듬었으며, 서버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매일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매일 같은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는데,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1인 개발자에게 가장 잔인한 순간은 명확한 실패를 마주할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적'의 상태가 지속될 때입니다. 트래픽은 박스권에 갇혀 있고, 수익은 발생하지 않으며, 확실한 지표조차 보이지 않는 시기. 이 모호함의 구간에 들어서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과연 정당한 보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해 말이죠.
2. 지표가 침묵하는 시기의 고통
전략 컨설턴트로서 저는 늘 숫자로 증명되는 세상을 살았습니다. 프로젝트의 성공은 데이터로 말해야 했고, 모든 행동에는 논리적인 근거와 기대 수익이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만드는 서비스들은 그런 명확한 지표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idealtypetest.com을 배포하고 나서 제가 마주한 것은 화려한 대시보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별 트래픽이 조금씩 찍히는 것 외에는 유저들이 이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메일함은 비어 있고, 실시간 지표는 평온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합니다.
성공했다면 확장을 고민했을 것이고, 완전히 실패했다면 깨끗이 접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실패한 것도 아니지만 성공한 것도 아닌, 이 애매한 시점이 가장 위험합니다.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할지 결정하는 것이 그 어떤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을 짜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집니다.
3. 질문의 방향을 바꾸다: 계속해야 하는가 vs 할 수 있는가
반복되는 고민 끝에 저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전에는 "이 서비스를 계속해야 하는가(Is it worth it?)"라는 외부의 결과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는가(Can I sustain it?)"라는 내부의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현재의 무색무취한 지표들은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내가 계속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달라집니다. 다온이, 바오와의 산책 루틴을 지키고 있고, 하루에 몇 시간씩 코드를 짤 수 있는 멘탈 체력을 회복했다면, 저는 '계속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외부의 기준(수익, 트래픽)으로 지금을 평가하면 의미 없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기준(성장, 루틴의 유지)으로 평가하면 지금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는 시기입니다.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1인 개발자는 결코 이 모호함의 구간을 버텨낼 수 없습니다.
4. 전략적 포기를 위한 나만의 기준점
물론 무조건적인 버티기가 정답은 아닙니다. 희망 고문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역설적으로 '포기하기 위한 기준'을 미리 세워두기로 했습니다. 멈출 이유가 충분할 때 미련 없이 멈추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세운 포기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일정 기간(예: 6개월) 동안 유의미한 트래픽 변화나 지표의 변동이 전혀 없는가?
- 서비스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보거나 새로운 시도를 했음에도 반응이 전무한가?
- 이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것이 나의 경제적, 정신적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가?
중요한 것은 지금 제가 마주한 상태가 아직 이 기준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지표가 정체되어 있긴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현지화 전략과 기능들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습니다. 완전히 접어야 할 만큼의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역설적으로 제가 '조금 더 가야 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5. 결과는 계단식으로 온다
우리는 노력이 선형적으로 결과에 반영될 것이라 믿고 싶어 합니다. 10을 투자하면 10만큼의 지표가 올라가길 기대하죠. 하지만 현실 세계, 특히 글로벌 서비스의 영역에서 결과는 종종 계단식으로 나타납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긴 수평선 아래에서, 우리가 매일 고치고 다듬은 코드와 문구들은 보이지 않는 데이터로 쌓여갑니다. 그러다 어느 지계(Tipping Point)를 넘어서는 순간, 그래프는 급격히 꺾이며 위로 솟구칩니다. 문제는 그 변곡점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헷갈리고 어렵습니다. 지금의 수평선이 곧 끝날 계단인지, 아니면 끝없이 이어질 낭떠러지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멈추는 순간, 그 계단을 올라갈 가능성은 0%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6. 계속하는 것도, 멈추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
결국 지금 제가 내린 결론은 '계속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대단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멈출 이유보다 계속할 이유가 단 1%라도 더 많다면, 그 선택을 믿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멈추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자원의 재배치일 뿐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정리를 위한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라고 제 직감이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아, 이제는 정말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 것입니다. 혹은 "와, 역시 그때 계속하길 잘했다"라고 외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그 결정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조금 더 가는 것'입니다.
7. 맺으며: 모호함 속에서 걷고 있는 당신에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저와 같은 지루한 수평선 위를 걷고 계신가요? 지표는 침묵하고, 주변의 시선은 따갑고,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가득한 그 길 말입니다.
그럴 때는 질문을 바꿔보세요. "이게 성공할까?"가 아니라 "나는 오늘 하루를 버틸 루틴이 있는가?"라고 말이죠. 명확한 정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냥 오늘 하루치만큼의 코드를 짜고, 오늘 하루치만큼의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오늘도 조금 더 가기로 했습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중에 뒤를 돌아봤을 때, "그때 조금만 더 가볼걸"이라는 후회는 남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의 선택이 무엇이든, 그 선택을 내리기까지의 고뇌를 응원합니다. 우리 조금만 더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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