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라는 깐깐한 언어를 배우는 중입니다: 주어 생략 금지!
"적당히 알아듣는 법"이 없는 이 세계에서, 전략 컨설턴트가 논리 하나로 집을 짓는 법
1. 기억 저편의 HTML과 다시 만난 파이썬
저와 코드의 첫 만남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등학생 시절, 방과 후 컴퓨터 교실에서 처음 접했던 HTML이 그 시작이었죠. 당시엔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도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저 화면에 글자를 띄우고 색을 바꾸는 신기한 놀이 정도로 기억 속에 묻어두었습니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흘러, 스타트업에 합류하기 직전 다시 '파이썬(Python)'이라는 언어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전략 컨설턴트로서 엑셀(Excel)의 수많은 함수와 공식을 다루는 데 익숙했던 저에게, 파이썬은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했습니다. 엑셀의 수식처럼 논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에, 코드가 '외계어'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 이것도 결국 하나의 정교한 공식이구나"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죠.
하지만 본격적인 배움의 과정인 창업 부트캠프와 AI 부트캠프를 거치면서, 저는 코드가 단순한 '공식' 이상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규칙을 가진, '생략이 허용되지 않는 구체성의 언어'였습니다.
2. 엑셀은 인테리어지만, 코드는 기초공사다
전략가로 일하며 엑셀을 다룰 때, 저는 이미 지어져 있는 집 안에서 벽지를 고르고 가구를 배치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 가까웠습니다. 엑셀은 사용자가 보기 편한 UI를 제공하고, 모든 장비와 재료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준비된 재료들을 조합해 원하는 결과를 뽑아내는 것이었죠. 결과가 칸마다 즉각적으로 보였기에 시행착오도 직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딩은 달랐습니다. 코딩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황무지에 설계도를 그리고 삽을 뜨는 '기초공사'부터 시작해야 하는 집짓기였습니다. 엑셀처럼 모든 환경이 갖춰진 상태가 아니라, 어떤 재료를 쓸지, 하중을 어떻게 견딜지, 배관은 어디로 뺄지부터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무턱대고 코드를 짜 내려가다가는 중간에 구조를 고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집의 기둥을 잘못 세우면 인테리어를 아무리 화려하게 해도 결국 무너지는 것처럼, 코드 역시 초기 설계와 기초공사가 튼튼하지 않으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기술 부채로 돌아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까만 화면 위에 텍스트만 가득한 그 고독한 작업은, 화려한 UI 뒤에 숨겨진 본질적인 구조를 만드는 숭고한 과정이었습니다.
3. 맥락의 언어 vs 구체성의 언어
인간의 대화는 '맥락'의 예술입니다. 우리가 "나 다녀올게"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굳이 묻지 않아도 제가 문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일을 보러 간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해도 대화가 통하는 이유는 우리가 공통된 맥락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드는 생략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다녀와"라는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누가(Who), 어디를(Where), 어떻게(How), 어떤 목적으로(Why) 다녀와야 하는지를 빠짐없이 구체화해야 합니다. 아주 사소한 생략 하나가 시스템 전체의 '에러'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코드의 특성은 제 사고방식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주었습니다. 전략가로서 논리적인 가설을 세우는 것과, 개발자로서 그 가설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코드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정밀함을 요구했습니다. 쉬운 일이라도 모두 짚고 넘어가야 하는 코드의 정직함은, 1인 빌더로서 서비스를 구축할 때 가장 믿음직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4. 창업가와 건축가: 도구를 넘어서는 문제 해결 능력
창업 부트캠프에서 저는 'MVP(최소 기능 제품)'를 빠르게 배포하고 유저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성공한 창업가들과 투자자들의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으며 방향을 전환(Pivot)하는 유연함을 익혔죠. 반면 AI 부트캠프에서는 기술을 도구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능력을 길렀습니다.
여기서 저는 중요한 연결 고리를 발견했습니다. 전략 컨설턴트의 사고방식과 개발자의 사고방식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집을 짓는 도구와 재료가 똑같아도, 건축가가 어떤 생각을 담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이 됩니다. 코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파이썬이든 자바스크립트든, 그것은 도구일 뿐입니다. 진짜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 도구를 사용해 '어떤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해결할 것인가'라는 건축가적 철학입니다.
전략가로서 쌓아온 통찰력은 제가 코드를 짤 때 단순히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 서비스의 목적과 사용자 가치를 중심에 두게 만듭니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 그것이 제가 코드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5. 결론: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설계하다
저는 여전히 파이썬이 가장 편하고, 웹 배포를 위해 익숙하지 않은 프론트엔드 언어들과 씨름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때로는 엑셀처럼 결과가 바로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고, 생략할 수 없는 코드의 구체성 때문에 머리를 싸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과정을 즐깁니다. 코드는 저에게 세상을 관찰하고 재정의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선물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비전공자로서 하나씩 기술을 늘려가는 과정은 느리지만 단단합니다. 순수 HTML로 바닥을 다지고, 11ty로 효율을 찾고, 이제 리액트(React)와 백엔드 심화 과정으로 나아가는 저의 여정은, 나만의 철학이 담긴 견고한 집을 지어가는 과정입니다.
전략가의 눈으로 세상을 분석하고, 개발자의 손으로 그 대안을 직접 짓는 삶. 코드라는 새로운 언어는 저를 단순한 분석가에서 세상을 직접 설계하고 구축하는 '빌더'로 거듭나게 해주었습니다. 증명되지 않은 성장이 불안할 때도 있지만, 제가 한 줄씩 써 내려가는 이 구체적인 언어들이 언젠가 세상에 없던 멋진 건축물로 완성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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