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길을 버리는 건 용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익숙함을 떠나 불확실함을 택한 이유. 그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에 대해...
1. 이미 주어진, 너무나 설명하기 쉬운 길
전략 컨설턴트이자 연구원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제 앞에는 항상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 같은 '안정적인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굳이 그 길을 벗어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죠. 이미 업무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고, 어떤 문제가 주어져도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지 머릿속에 명확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타인에게 내 직업과 성과를 설명하는 것도 무척 쉬운 일이었습니다. 명함 한 장이면 제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전문성을 가졌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 길 위에서 저는 안전했고, 유능했으며,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완벽한 지도 위에서 저는 조금씩 길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2. 선택이 아닌 '관성'이 되었을 때의 위기감
문제는 그 안락함이 더 이상 제 의지에 의한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출근을 하고 보고서를 쓰는 행위들이, 제가 원해서 하는 결정이라기보다 그저 주어진 흐름에 몸을 맡기고 계속 흘러가는 관성에 가까워졌습니다. 익숙함이 쌓일수록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 본질적인 물음은 일상의 루틴과 안락한 보상 뒤로 숨어버렸고, 저는 어느덧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상태'에 최적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잘 나오지만 그 결과 속에 '나'라는 주체는 점점 희미해지는 기분. 그것은 커리어의 정점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멈추어버린 정체(Stagnation)의 신호였습니다.
3. 용기가 아니라, '버티기 힘든 쪽'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안정적인 직장과 쌓아온 커리어를 뒤로하고 불확실한 독립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는 저를 보며 "정말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평가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에게 이것은 대단한 용기를 내어 저지른 도전이라기보다, 저만의 생존 논리에 따른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안정적인 길은 한없이 편해 보였지만, 제 내부에서는 다른 종류의 부담과 고통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분석 방식, 예상 가능한 결과물,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질문들. 저에게는 그 익숙한 정체 상태를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차라리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들어 맨몸으로 부딪히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즉, 저는 용기를 낸 것이 아니라, 더 고통스러운 쪽을 피해서 제가 버틸 수 있는 쪽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4. 불확실함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기본값
처음 독립을 고민할 때는 이 길에서도 어떻게든 '확신'을 먼저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략가 출신답게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시장 정보를 더 많이 모으고, 예상되는 리스크를 엑셀 시트에 정리해 철저히 관리하면 불확실함이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필드에 나와 1인 개발자이자 파운더로 활동하며 깨닫게 된 냉혹한 진실이 있습니다.
불확실함은 극복하거나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이 길을 걷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입장료이자 삶의 기본값(Default)이라는 사실입니다. 리스크를 완벽히 통제하려 노력할수록 제 실행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두려움의 크기만 비대해졌습니다. 대신 그 불확실함을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모르는 상태로 일단 간다"는 원칙을 세운 순간, 비로소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질문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5. 선택은 결과보다 항상 먼저 온다는 사실
우리는 흔히 어떤 결과가 성공적으로 나오고 나서야 "그때 내 선택이 옳았다"고 정당화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순서가 완전히 반대입니다. 선택을 먼저 내리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뒤따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며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과가 선택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결과를 견인합니다. 그래서 선택은 늘 고독하고 어렵습니다. 정답임을 확인하고 고를 수 있는 객관식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선택은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내가 직접 내린 선택이기에,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뼈아픈 실패와 수많은 시행착오조차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자산으로 흡수할 수 있는 '주체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6. 후회하지 않는 나만의 새로운 의사결정 기준
지금 저의 의사결정 기준은 "이 선택이 객관적으로 맞는가"에서 "이 선택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있는가"로 완전히 옮겨왔습니다.
내가 내린 결정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공들여 만든 서비스가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도 있고, 기대했던 수익이 나오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관성에 떠밀려 내린 결정이 아니라면, 제 스스로 고민하고 마침표를 찍은 선택이라면 저는 그 결과를 버텨낼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안정이 아니라 '나의 방향' 을, 확실함보다 '삶의 지속 가능성' 을 선택한 상태입니다.
7. 더 화려한 길보다 덜 후회할 길을 향해
저는 이 길이 이전의 커리어보다 더 화려한 성공을 보장해주거나, 더 높은 명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다만 10년, 20년 뒤의 제가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았을 때,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갖기보다 '그래도 그때 한 번 시도는 해봤지'라며 덜 후회할 것 같은 방향이었기에 몸을 움직였을 뿐입니다.
안정이라는 단단한 껍데기를 스스로 깨뜨리고 제 안의 본질적인 질문들에 집중하기로 한 것. 그것은 타인이 부러워할 만한 대단한 용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고여버린 삶에서 저 자신을 구조하기 위한, 가장 솔직하고도 절박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그 선택이 가져온 불확실한 소음과 고요함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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